귤렌 사업의 자금조달
터키와 사람에 대해 귤렌이 가지고 있는 비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양질의 교육의 중요성으로, 이는 인간의 발전과 이를 통해 터키의 21세기 현대로 진입을 위한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처음에는 터키에서 그 다음 단계로 전 세계를 통해 학교 설립을 주창했다. 이를 위해서는 관리자, 교사, 학생 등 운동 참가자 모두의 헌신과, 각자 능력에 따른 재정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가 인터뷰한 모든 서클에서는 기숙사, 준비과정 교육, 학교 건립, 어려운 학생에 대한 장학금 제공 등, 교육사업을 지원할 방식을 강조하고 있었다.
각 학교에는 독자적인 회계 제도와 함께 예산과 회계 장부를 관리하는 회계원이 있다. 그들은 지역과 국가 당국, 자선 트러스트의 후원자에게 책임을 지고 있다. 지역의 후원자는 특정 시점에 진행되는 사업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데, 이들이 건설 도급업자, 회계사, 이사진, 교사, 교장 등의 위치에서 사업의 많은 부분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들이 기부금 사용 방식을 감시하는 것은 아주 간단해서 결과적으로 재정 부문에서 투명성이 제고된다. 한 사업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선 귤렌 운동 참가자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이 운동의 지지자는 지원이 종점에 달했는지 걱정하지 않으며, 추적하지도 않는다. 상황을 확인하려면 모든 정보가 전 과정에 다 나타나고 있어 자료를 보면 된다.
마찬가지로 휴스턴에서 귤렌 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어떤 지역 사업가는 말했다. “내가 활동 내역을 잘 모르더라도, 이 사람들을 잘 알고 있어, 믿고 있다. 그래서 잘 사용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기부한다.”
예를 들어, 터키 동남부의 도시인 마르딘에서 일단의 지역 사업가들이 3년간 만나면서 (1988–1991) 국가가 그 도시뿐 아니라 터키 동남부 지역의 학생이 대학 입학시험에 경쟁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이 시점에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현대식 학교 건립을 요구하는 귤렌의 대중 설교를 듣고 있었다. 이 사업가들은 이즈미르, 이스탄불, 가지안테프에 있는 귤렌 학교의 성공에 고무되었다. 이 귤렌 학교는 연구 중심의 교육과 세계 과학 경시대회에서의 유례 없는 성공으로 타 학교보다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 학교 방문 중, 이들은 학교 기부자들 중에는 사업가뿐 아니라 노동자, 교사, 공무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르딘에서 이들은 교육적 비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더 광범위하게 접촉하면서 학교 후원을 간청했다. 일부에서는 돈을, 또 다른 사람은 기부할 만한 사람을 찾겠다고 약속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기부 형식으로 공급자재와 장비 제공을 약속하고, 또는 건설 작업시 육체 노동을 제안했다. 현재 이 도시의 귤렌 운동 학교에 있는 모든 교사는 최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한 명의 월간 학비를 대고 있다.[1]
앙카라에서 소규모 직물사업에 종사하는 12명의 사업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업가들이 어떻게 처음 귤렌 사업과 인연을 맺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예컨대 1985년, 한 이맘이 모스크로 찾아와서 거기에 있었던 사업가들에게 도시에 청소년을 위한 학교 건립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떠난 후, 이들은 매주 두 번 만나면서 그 일을 협의하고 그 결과 학교 건립에 지원을 약속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주고, 또는 도시의 다른 사업가에게 재정지원을 요청했으며, 다른 한 쪽에서는 콘크리트, 의자 등의 자재나 자원봉사를 제공했다. 이 결과 단 시일 내에 사만욜루 칼리지가 문을 열었다.
사업가들은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학교에서 필요한 것을 알아보고, 지원이 필요한 추가 사업을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91년 소련 붕괴후 아제르바이잔에서 학살 사건이 발생하여 도움이 필요했다. 이에 앙카라의 귤렌 공동체가 움직이기 시작해서, 앙카라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18명의 사업가들이 아제르바이잔을 방문, 지역의 귤렌 운동 참가자로부터 모은 돈과 물자를 전달했다. 그 중 한 사업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에게는 중요한 여행이었으며, 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대부분 나처럼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아주 다른 품성의 사람들로, 내가 귤렌의 가르침과 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여행후 나는 귤렌 운동에 참가하고 있다.”
포커스 그룹에 있는 다른 사업가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는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1998년 어느 날, 그는 살고 있는 지역에서 알고 있는 사업가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던 한 법대생을 만난다. 이 사업가는 그들에게 법대를 다닐 여력이 못 되는 형편이 어려운 법학도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몇 일 후, 일단의 법대생이 그의 상점에 찾아온다. 하지만 이 학생들은 돈에 관한 말은 하지 않고, 나라와 세계 정세에 대해 이야기 했다. 몇 주 후 학생들은 이 사업가를 그들이 사는 집으로 초청했고 거기에는 터키의 여러 곳에서 온 대부분 가난한 가정 출신의 법대생 10명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돈 이야기는 없었고 학생 몇 명이 사업가의 상점을 다시 방문하고, 학교 공부에 어려움을 겪던 그의 아들을 만난다. 학생들은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시점에도 돈 이야기는 없었고, 이 사업가는 이 학생들을 1년 동안 보면서 개인적으로 잘 알게 되자, 법대 졸업 시까지 장학금을 주었다. 1988년 이후 지금까지도 그는 어려운 법대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
위의 이야기는 귤렌 자신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터키의 여러 지역에서 대학 캠퍼스 근처에 살면서 했던 행동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한 때 교사로 봉직하고 많은 세월을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보살피면서 지냈다. 196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귤렌과 같은 집에 살았던 부르사의 한 신사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2층의 아파트로 귤렌을 찾아가 배우고 격려를 받았다고 그는 회상하면서, 귤렌을 중심으로 만났던 이 대학생 그룹이 터키에서 귤렌 운동의 시작점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1] Kalyoncu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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